람보르기니의 상세한 차체와 그림들, 역동성 넘치는 람보르 기니는 얼마인지, 어떤 종류가 있는지 보실 수 있습니다.
휴식에 보는 람보르기니 미우라 이야기
우리의 자동차 시작점인 시발자동차처럼 "페르치오 엘리오 아르투로 람보르기니"(실제 이탈리아 이름)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남겨진 트럭의 엔진을 이용해서 'Carioca"트럭을 만들었다. 일반 오일(휘발유)로 시동 후 저렴한 디젤로 전환할 수 있는 연료 자동화 장치를 만들어 많은 인기 트럭들을 만들게 된다.
아마도 들어봤을 이야기이다. 돈을 많이 벌던 람보르기니는 개인용으로 2대의 페라리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도로에서의 주행 성능에 만족을 하지 못했고 자신의 의견을 전하고자 엔초 페라리를 만나러 갔다가 수치감을 느끼고 돌아온다. 그때 엔초 페라리는 그에게 "트랙터는 잘 몰지만 페라리는 평생 잘 몰지 못할 거야"라고 했단다.
이에 열받은 람보르기니는 자신이 직접 페라리 250GT를 분해하고 살핀뒤 자신감을 갖게 되었고 바로 스포츠카 제작에 들어간다. 1963년 드디어 신형 350 GTV를 토리노 모터쇼에 내놓았으나 판매는 저조했고 1964년 양산차인 350GT를 다시 내놓았고 13대의 차량을 판매하게 된다.
이후에 350GT에 두개의 좌석을 추가한 400GT를 선보였고 드디어 다음으로 획기적인 디자인의 스포츠카인 미우라를 내놓게 된다. 후면엔진을 달은 최초의 미드엔진 차량으로 미우라 P400이 탄생 세계적인 스포츠카가 탄생되게 된다.
퀸의 가장 많이 알려진 곡으로 게임이나 경기중에 나오는 환상적인 노래입니다. 항상 그날의 감동을 기억하고 추억하기에 가장 좋은 선택 퀸의 우리는 챔피온 입니다.
람보르기니 미우라 자동차 이야기
1965년 11월에 토리노 모터쇼에 나온 기본 샤시 형태의 모양은 가벼움을 알려준다. 강판에 일정하게 구멍을 뚫어 최대한의 중량을 줄였다.(강도는 그대로이다) 초기에 외형은 조르제토 주아로가 제작했고 완성은 마르펠로 간디니가 완료하게 된다. P400 미우라는 가장 획기적인 내부를 조성하였고 단 275대만이 제작되었다.
후면의 브레이크에 냉각을 위해서 공기를 끌어들이는 패널이 있으며 앞과 뒤로 넓게 열리는 개방형 오픈을 적용하여 차량의 부품들에 확인을 손쉽게 해 주었다. V12의 강력한 엔진이 좌석의 후면 부위에 위치하여 폭발적인 배기음을 직접 경험할 수 있다. 또한 엔진과 변속기는 일체 형으로 주조되었다.
미우라란 이름을 짓는다. 람보르기니는 그의 오래된 친구인 스페인의 투우사 이자 사육사인 돈 에두아르도 미우라의 이름을 따와 정하게 된다. (그래서 엠블램에 황소가 나온다) 1967년 미우라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차로 알려지게 된다.(최고 시속이 163 mph)
지금 돌아보면, 1960년대 미우라는 상당한 문제점도 갖고 있었다. 아마도 람보르기니도 콘셉트카로 생각했을 듯하다. 고속 주행 시에 프런트가 떠버리거나, 흔들림과 진동 그리고 화재까지 심각한 문제가 산재했다. 하지만 워낙 고가 정책으로 이후 판매분부터는 한 가지씩 이를 해결해 나갔다.
람보르기니는 한대도 안 팔릴 거라고 예상을 했었고 이 모델을 이용해서 다른 차량 파는데 열을 올렸었다. 하지만 많은 주문이 들어왔고 개선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또한 구매자가 서비스를 받기 위해 람보르기니 서비스를 찾을 때에 식사등을 대접하며 시간을 끌도안 서비스 직원들이 총동원돼서 자동차를 정말 분해해서 부품을 전부 새 걸로 갈았다는 전설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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